“은퇴하셨다니, 이제 심심하시겠어요?”
누군가 이렇게 말할 때면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.
심심하긴커녕, 요즘이 더 바쁘고 재미있기 때문이다.
바쁘다는 말이 꼭 일거리를 뜻하진 않는다.
바쁘게 나 자신을 돌보고,
잊고 있던 관심사와 취미를 되찾고,
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루를 보내는 데 시간이 모자랄 정도다.
은퇴는 어떤 의미에선 ‘퇴장’이 아니라 ‘재등장’이다.
누군가의 부모, 누군가의 직장인으로 살아왔던 내가
비로소 ‘진짜 나’로 돌아오는 시기다.
젊을 땐 시간에 쫓겨 하고 싶은 걸 미루고 살아왔다.
하지만 이제는 시간을 내가 통제할 수 있다.
그 자체가 자유이고, 행복이고, 선물이다.
이제야 책장을 열어 읽고 싶은 책을 골라낼 수 있고,
미뤄뒀던 여행지를 하나씩 가볼 수도 있다.
아침에 눈을 떠 창밖의 햇살을 감상하고,
산책길에서 피어난 꽃 한 송이에 마음이 설레기도 한다.
젊을 땐 느끼지 못했던 ‘살아 있음의 감각’이
은퇴 후에야 비로소 되살아난다.
누군가는 은퇴를 ‘무용한 존재가 되는 것’처럼 말하지만,
사실 은퇴 이후의 삶은
경험, 관찰, 여유, 사색, 배려, 이해 같은
나이 든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깊이가 있는 시간이다.
남을 챙기느라 잊고 살았던 ‘나 자신’을 다시 꺼내는 시간.
물론 걱정도 있다.
경제적인 부담, 건강에 대한 불안,
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 때 오는 외로움.
하지만 그런 불안 앞에서도 ‘이제부터 내 인생’이라는 생각을 놓치지 말자.
준비한 만큼 누릴 수 있고,
마음먹은 만큼 바꿀 수 있다.
꼭 거창한 계획이 아니어도 좋다.
매일 규칙적으로 걷고,
좋아하는 음악을 듣고,
맛있는 차 한 잔을 즐기고,
마음을 나눌 사람 한 명만 있어도,
그 하루는 충분히 가치 있다.
우리가 그토록 바랐던 여유와 자유는
지금 여기에 있다.
은퇴는 끝이 아니라, 진짜 인생의 시작이다.
이제는 나를 위해 살아도 되는 시간이다.